잡지 읽다가 문득 생각나서 몇 자 적어봅니당.
저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밤 10시가 기본이고 새벽까지 일하기 일쑤였던 데다 실험실 안에서만 생활하기도 했고 대학원 분위기 자체가 꾸미고 다니면 좀 정신빠진 애(?)로 여기기도 하고 천성이 게으르기도 하고 해서 이래저래 5년 정도는 화장을 거의 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무슨 특별한 행사 있을 때 뭣도 모르고 부랴부랴 제일 필요해 보이는 것만 사서 쓰고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그런 원시인이었지요. 허허.
그런데 어떤 경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임윤님 블로그를 들어가게 되었어요. 사실 그 전에도 번역일을 하고 싶어서 시중에 있는 번역관련 책들을 다 긁어모아 독파했고 그러면서 제 전공쪽 교양서를 번역해보고 싶단 생각을 하고 있던 상태였어요.
아니 그런데 화장품 번역? 패션 번역? 여행 번역? 아니 이런 번역 일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신세계였죠. 실미도에 올라와 있는 뷰티와 패션 번역 과제를 제출하고 나니, 와 이건 정말 재밌구나. 설레더군요.
그리고 요즘엔 좀 더 제대로 공부해보려고 잡지를 읽고 있는데 와 너무 놀라워요. 일단 발색력 밀착력 지속력 이런 단어를 보고 말해보는 느낌 자체가 참 좋네요. 논문 속 딱딱한 글만 주로 읽어온 저로써는 이건 뭐 그냥 제가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예요. 특히 립 제품 설명에서 느껴지는 우아한 관능이란.
"입꼬리부터 천천히 공들여 바르면 한 번의 터치만으로도 입술 안쪽부터 립라인까지 균일하게 컬러를 입힐 수 있다. 세워 바르면 브러시 없이도 입술산까지 깔끔하고 섬세하게 살아난다"
이런 글 말이죠.
읽는 순간 바르는 장면이 눈 앞에 바로 그려지는.
며칠 전에는 백화점 1층에 가봤습니다. 다른 층은 다 가도 어쩐지 1층만은 들르지 않았던 저인데 용기를 내봤어요.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진짜 후다닥 행진하고 돌아왔는데 그 짧은 순간에 느낀 게 굉장히 많았습니다. 일단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프로페셔널 해보이는 직원분들에게 감탄했고 남자직원이 여성고객에게 뷰티제품 설명해주는 모습에도 적잖이 놀랐습니다. 저 너무 옛날 사람 같나요... 담번엔 직원분들에게 대화를 시도해볼 예정입니다! 허허...
아 지금 일 관련해서 제 상태는 계약을 꽤 진행하긴 했지만 일이 많이 들어오고 있지는 않은 그런 상태입니다ㅜㅜ 소소한 일감들만 들어오고 있어요. 이것도 다 테스트려니 생각하고 있습니다.
<프리랜서 번역가 수업>에서 보니 50군데 이상은 뚫어놔야 한다고 적혀있더라구요. 좀더 분발하고! 공부도 충분히 잘 해놔서 나중에 일이 넘쳐 들어올 때 막힘없이 잘 해내야지 마음을 다잡아봅니다.
쑥쓰럼이 많아서 주로 눈팅만 하다가 어쩐지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글을 올려봤습니다.
다들 화이팅해서 멋지게 자리잡아 보아요!
하고 어수선한 글을 샤악- 정리해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학원 중간에 때려치고 나온 저는 먼저 존경의 큰절을 올립니다... 저도 글로 화장을 배웠지만, 실미도 오신 분들은 모두 곧 백화점 1층을 쓸고다닐 수 있는 실력과 재력이 될 것입니다. 파이팅입니다!
으앗 이런 꿀팁까지... 실미도야말로 행복한 곳이네요 ㅡ///ㅡ) 감사합니다! 현경님 말씀대로 해볼게요!!!
50군데 어헝헝 ㅠㅠㅠㅠ 갈길이 머네요오.. 저는 라이트한 코덕이었기에 이뮨님을 알게 되었는데 어쩌다보니 메이크업 실미도가 아니라 번역 실미도에 와있네요 (...) 진화님 다음에는 마음에 드는 립스틱을 하나 사보세요! 이것저것 발라보시는 것 뿐 아니라 얼굴에 테스트도 친절하게 해줄거에요. 백화점 1층은 행복한 곳이랍니다... (그리고 발색후 내 얼굴에 맞는 색인지는 꼭 백화점 입구 밖으로 나가서 자연광 아래에 한번 더 체크하세요! 백화점은 보통 조명이 노리끼리해서 색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아요)
고독한 대학원생의 향기...에서 육성으로 웃었어요...ㅋㅋㅋㅋ 감사합니다! 해민님 화이팅이요!!!
진화님 멋쪄요...기승전결이 칼같이 지켜지는 글에서 느껴지는 고독한 대학원생의 향기에 잠깐 눈물을 훔쳤습니다...저는 번역 책 사놓고 다 끝낸 책이 한 권도 없는데, 이 글을 읽고나니 생각 나서 하루에 몇 페이지라도 짬내어 읽겠다는 다짐이.ㅎㅎㅎㅎㅎ 좋은 글 감사해욧! :)
50군데!;;; 하기사 에이전시는 많으면 많을수록 선택의 여지가 생기니 일감 조정할 때 뭔가 배짱도 생기고 튕겨낼 수 있고..그렇겠네요. 화장품은 잘 안 사지만 (게을러서;) 텍스트 읽는 건 저도 좋아합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듣고 읽는 게 즐거운 거 보면 그래도 무늬는 여자인 모양입니다;;;;
저도 낙심하고 있다가 다시 읽으면서 찾은 부분이었어요... 그제야 다시 마음을 굳게 먹어야겠다 생각이 들더라구요ㅜㅜ
나름 '프리랜서 번역가 수업'을 열심히 2회독 했다고 생각했는데, 50군데 이상은 뚫어놔야 한다는 중요한 대목을 놓쳤네요. 열심히 영업했지만, 저는 아직 멀었군요. ㅠ.ㅠ
전 꽤 오랫동안 메이크업의 세계에 푹 빠져서 유툽에서 동영상도 많이보고 잡지도 많이보고, 이것저것 제품도 많이 샀어요. 요새는 그 세계에서 빠져나와 쌩얼로 살고있는 상태인데요, 메이크업 제품들 정리하다가 깜짝 놀랐어요. '뭔 립스틱을 이리도 많이 샀대?' 제가 입이 작고 입술이 얇아요. 입이 진짜 쬐그마하고 볼품없는데 립스틱을 수십개를 사놨더라구요. 요 쪼고마한 입술에 바를 게 뭐가 짜다라 있다고 ;;;;; 아주 크레이지모드로 립스틱을 사모았던 불가사의한 시절이 있었다고 회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