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번역가로서 제가 항상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 있어요. 실컷 영업 해가지고 작업물 수주한 후에, 번역이 너무 어려워서 못하고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겁니다. 주문 단계에서 소스텍스트를 보고 한 눈에, "이번 건은 못하겠다. 다음에 거래하자." 이러면 차라리 나은데, "내가 할래 내가 할래" 이래놓고 해보다가 도저히 못하겠다면서 도중에 물리는 건 진짜 낭패일 것 같아서요.
그렇지만 또 많은 소스텍스트가 첫눈에는 어려워보이다가도, 어찌어찌 이리저리 해보다 보면 실마리가 풀리는 수도 많아서요. 첫눈에도 완전 쉽고 실제로 해봐도 완전 쉬운 경우는 잘 없더라구요. 첫눈에는 좀 어려워보이는데, 받아들고 해보다보면 다 하게되는 경우가 가장 많았어요.
한 번은 시만텍(Symantec) 마케팅 자료를 던져준 곳이 있었어요. 보는 순간 '이건 뭐지?' 하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어려운 단어가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번역해야 할 지 감이 안 잡혀요. 그런데 이 건은 다행히(?)그냥 훅 날아가버렸어요. 번역에 들어가기 전에 번역 회사 쪽에서 "이건은 취소되었다. 미안하다. 다음 기회에 거래하자." 이러더라구요.
시만텍이면 IT쪽에서 유명한 보안업체고, 제가 IT를 전문분야랍시고 내세우고 있기도 해서 언젠가는 시만텍 소스를 다시 만날 지도 모르니 찬찬히 들여다봤습니다.
보면 볼수록 멘탈 붕괴되는 느낌......
어려운 단어가 하나도 없는데, 번역할 한국식 표현이 하나도 안 떠오르는 겁니다. 진짜로 어려운 단어가 하나도 없는데, 한국식 표현이 하나도 안 떠올라서 번역을 도저히 못하겠더라구요.
이 시만텍 마케팅 자료가 오랫동안 머리에 맴돌았어요. '시만텍 자료 도저히 번역 못하겠던데....'
그러다가 오늘 시만텍 한국 홈페이지에 들어가보고 나서야. 이 불가사의한 느낌의 정체를 깨닭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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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텍스트가 시만텍 한국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한국어 번역 결과물입니다. Symantec Secure One과 Core Security, Threat Protection, Information Protection, Cyber Security Services --->이 부분을 한국어로 번역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패션이나 화장품 분야처럼 음차한 것도 아니에요. 영어 그대로 놔뒀어요.
시만텍 한국 홈페이지의 텍스트를 보니 어려운 단어는 하나도 없는데, 번역할 한국식 표현이 하나도 안 떠올라서 번역을 못하겠다는 이 괴상한 느낌이 뭔지 알겠더라구요.
한국어로 번역도 하지말고, 그렇다고 패션이나 화장품 분야처럼 음차하지도 말고, 그냥 영어로 내버려둬야 하는 부분이 많았던 겁니다.
이제야 드디어 의문이 풀리면서, 가슴 갑갑했던 느낌이 사라지네요. 속 시원합니다. 내가 바보였던 게 아니었나봐요.
한국어로 번역을 하거나, 아니면 음차하거나, 둘 중 하나는 해야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둘 다 못하겠으니 시만텍 자료를 보고 멘탈 붕괴였나봅니다.
한국어로 번역하거나, 음차 하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니라, 영어로 그냥 놔둬야 하는 부분도 있을 수 있나봅니다.
이거 정말 공감합니다. 저도 프로즈에 사람 구합니다! 뜨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일을 따는 것도 따는 건데 막상 받아놓고 하다가 중간에 도저히 못하겠다가 되면 어쩌지? 이겁니다. 이게 너무 무서워서 초반에 프로즈 일이 올라와도 고민만 하다가 손 못한 적도 많아요 ;ㅅ;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더 부딪쳐 봤더라면 좋았을 텐데..
현재 자투리 일 받는 것도 파일 열기 전엔 늘 속이 울렁거립니다. 못하면 어쩌지, 오역 내면 어쩌지 이 두려움은 그냥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숙제 같은 것이 아닐까 싶은데…제 시간 안에 내가 납득이 가는 퀄리티를 뽑아내는 것! 역시 경험이 쌓이면 좀 더 수월해 지겠죠? 우리 같이 힘내요. ㅠ_ㅠ
시중에 나와있는 매뉴얼을 봐도 어떤 회사는 영어로 그대로 두고, 어떤 회사는 음차를 하더라구요. 최종 클라이언트나 번역 회사 의향에 따라 달라지기도 해서 저도 아직 고민중이에요.
뭔가 모르게 번역이 어렵게 느껴지면, 해당 회사의 한국어 홈페이지를 들어가보는 게 요령인가 봅니다. 진작 시만텍 한국 홈페이지를 들어가봤으면 의문이 빨리 해결됐을 텐데.
오 맨 쉐어링 감사합니다. 저도 생각해왔던 건데, 막상 회사 홈페이지 들어가보면 그대로 놔둔 게 많더군요. 그러고나니 뭔가 그냥 영어 그대로 둬야하는지 외래어로 만들어서 발음 그대로 한글로 적는게 나은지 + 해당 단어가 한국어로 쓰이는 보편적인 단어를 하나 하나 찾긴 찾아가며 번역을 해야하는데.. 하는 퍼즐을 생각하게 되더군요. ..아직 정확한 답은 모르겠으나 조만간 결론내리려는 생각입니다.